[아몬드 - 책 소개]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의 주인공 열여섯 살 윤재는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습니다. 아동기에 정서 발달 단계를 잘 거치지 못하거나 트라우마를 겪은 경우, 혹은 선천적으로 편도체의 크기가 작은 경우에 감정 표현 불능증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편도체의 크기가 일반인보다 작은 경우에는 특히 여러 감정 중에서도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공포를 잘 못 느낀다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공포를 못 느낀다는 건 사실 위험이 닥쳤을 때 본능적으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후천적인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공포, 불안감 등과 관련된 편도체가 일부는 성장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 편도체의 모양이 아몬드와 비슷해서 책 제목이 아몬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가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몬드를 먹기도 하고요.
윤재는 일반 사람들처럼 울거나 웃거나 감정을 느끼지를 못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와 할머니의 가정 교육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글과 그림으로 배워가면서 튀지 않는 아이, 평범한 아이인 척 살아가는 연습을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할머니와 엄마의 보살핌 아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열여섯 살 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윤재의 열여섯 번째 생일이었던 그날, 할머니와 엄마와 한겨울에 차가운 냉면을 먹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윤재에게 뜻하지 않게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어떤 남자의 갑작스러운 난동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누워있게만 되는 것이죠.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도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윤재는 장례식장에조차도 동요하지 않습니다. 하루아침에 혼자가 되어버린 윤재에게 엄마의 지인이자 새로운 보호자가 되어줄 이웃 심박사가 등장하고, 윤재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친구 곤이가 등장하고,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윤재의 마음에 들어온 밝고 명랑한 친구 도라가 등장하면서 어둡기만 했던 윤재의 삶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아몬드> 책 표지를 접했을 때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남자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는 왜 이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리고 책 제목은 아몬드일까 너무 궁금했습니다. 증명사진 같은 느낌의 표지에 '아몬드' 라는 글자만 씌어있어서 남자 주인공 이름이 아몬드인가 했을 정도로 무슨 내용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책을 읽으려고 표지에 있는 이 남자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찡 했던 것 같습니다. 책을 펼치고,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면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아무런 감정이 드러나지 않은 무표정인 주인공의 얼굴이 담긴 표지가 책 내용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고요. 이전에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나왔던 주인공 황시목 검사의 어린 시절을 드라마에서 봐서 그런가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까 마음이 더 아팠습니다. 운이 좋게 윤재 주변에도 윤재를 도우려는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내용은 해피 엔딩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스무 살의 윤재가 되기까지 겪었던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학습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낀다는 것,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그리고 또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아몬드 - 작가 소개]
저자 손원평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였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과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습니다. 2001년 제6회 <씨네 21> 영화평론상을 받았고, 2006년 제3회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순간을 믿어요>로 시나리오 시놉시스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아몬드>는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으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며,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으로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아몬드 - 추천사]
한국형 영어덜트 소설의 등장. 각박한 현실을 반영하듯 최근 영어덜트물의 경향은 주인공들이 극한의 고뇌를 겪거나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가혹한 선택에 직면한다는 것입니다.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재는 감정이 고장 난 아이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과연 윤재가 특별하고 별난 경우라고 볼 수 있을까요? 공감을 잃어버린 시대에 이 소설은 우리에게 타자를 상기시키고 고통을 표현하며 다른 삶을 상상하게 합니다. 비극적인 존재들이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고통 위를 기어 조금씩 앞으로 나갈 것임을 예감케 합니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 공감의 씨앗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이 바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자 희망입니다. 신체는 커 버렸지만 감정적으로는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실에서 <아몬드>는 고통과 공감의 능력을 깨우치게 할 강력한 소설로 침체된 한국 소설시장에서 파장을 몰고 올 것입니다.
- 출판평론가 한기호 / 교보문고 출판사 서평 내용 인용
이 추천사를 읽기 전에는 윤재라는 인물을 단순히 소설 속에나 등장할 법인 인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신체만 커버리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윤재가 소설 속 인물이라기보다는 현실 속에서도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랐습니다. 단순히 편도체가 작아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보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도 감정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은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고요. 이 책을 영어덜트 소설이다, 성장소설이다 이야기할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책 내용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을 하면서 저 또한 '내가 윤재였다면, 곤이였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몬드 - 인상 깊었던 내용]
매일매일 아이들이 태어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축복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군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누군가는 군림하고 명령하면서도 속이 비틀린 사람이 된다. 드물지만 주어진 조건을 딛고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좀 식상한 결론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 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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